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블라디미르 1세 (문단 편집) === 사후, 전설이 되다 === 사망 직후부터 성자로 취급받았다. 그의 시신은 동로마 제국의 황녀 안나와 함께 그가 세운 키예프 십일조 대성당에 매장되었다. 13세기 즈음까지 루스 국내에서만 성자로 취급받다가 13세기 후반에 세계 곳곳의 각종 기독교 《전례서》에 일제히 블라디미르 1세가 등장했으므로 이 즈음에 공식적으로 [[가톨릭]]과 [[정교회]] 양쪽에서 시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의 할머니 [[키예프의 올가]]가 시성된 시점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시성될 때 단숨에 일반 신자 출신으로써 최고의 영예인 [[사도]]와 동등한 성인에 올랐다. 그의 묘소는 잘 보존되어 오다가 [[1240년]] [[몽골 제국]]의 [[바투]]가 키예프를 파괴할 때 십일조 대성당이 파괴되면서 이곳에 묻혀있던 여러 루스 군주들의 묘소와 함께 파괴되었다가 1635년 키예프 대주교 페테르 모길라가 블라디미르 1세의 유골을 찾아내었다. 현재 블라디미르 1세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세 루스계 국가에서 자국 최고의 위인 중 한 명이자, 자국과 자국 문화의 근원이 되는 인물로 기리는 위인이다. [[1853년]] [[러시아 제국]]은 키예프에 성 블라디미르 1세 기념동상을 세웠다. [[1782년]]에는 [[러시아 제국]]의 [[예카테리나 2세]]가 제국 4등급 훈장으로 성 블라디미르 훈장을 제정했다. [[1862년]]에는 키예프에 성 블라디미르 대성당이 세워졌다. [[1957년]] [[러시아 정교회]]는 교단 훈장 중 두 번째로 높은 등급으로 성 블라디미르 훈장을 제정했다. [[소련]] 시대엔 종교적보다는 역사적, 문화적 의미에서 많이 기려졌고 블라디미르 1세가 거쳐간 지역과 아닌 지역을 막론하고 동상을 많이 세웠다. [[2002년]]에는 [[러시아 국가근위대]]의 [[수호성인]]으로 모셔졌다. [[2008년]]에는 [[우크라이나]]가, [[2010년]]에는 [[러시아]]가 블라디미르 1세와 키예프 루스의 개종을 기념하는 휴일을 만들었다. 공식적인 최고위 [[기독교]] [[성인]]인만큼 그의 이름을 딴 성당은 수도 없이 많으며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일대에는 무수히 많은 곳에 그의 이름이 붙어있고 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우크라이나 흐리우냐]] 1흐리우냐 화폐에는 블라디미르 1세의 초상화가 독립 직후부터 현대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있다.[* 3차 개정안까지는 지폐에 그려졌으나 4차 개정안에서 1흐리우냐가 동전이 되면서 동전으로 옮겨갔다.] [[2020년]]에는 [[러시아 해군]] [[SSBN]] [[보레이급 잠수함]] 4번함 블라디미르 대공함이 취역했다. 러시아는 [[연해주]] 지역 중 한 곳 앞바다에 블라디미르 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블라디미르 1세가 개인적으로 쓰던 [[문장]]은 후에 [[류리크 가문]]의 상징처럼 되었다가 현재도 [[우크라이나]] 국장 및 각종 우크라이나의 상징에 당당히 박혀있다. 우크라이나 국장의 삼지창처럼 생긴 무늬가 블라디미르 1세의 문장이다. 블라디미르 1세는 민담을 거쳐 많은 문학 작품과 극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민담에서의 블라디미르 1세는 그의 어머니 말루샤와 함께, 다른 대공들의 이미지와 슬라브 전래 민담에 내려오는 [[일리야 무로메츠]] 등 영웅들과 섞여서 전형적인 인자한 성군 캐릭터로 변했으며, 말루샤는 엄청난 통찰력을 가진 선한 마녀에 가깝게 그려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